영원한 자유 7장 오매일여
제 1 장 오매일여
1. 영겁불망(永劫不忘)
우리가 도를 닦아 깨달음을 성취하기 전에는 영혼이 있어 윤회를 거듭합니다. 그와 동시에 무한한 고(苦)가 따릅니다. 미래 겁이 다하도록나고 죽는 것이 계속되며 무한한 고가 항상 따라 다니는 이것이 이른바생사고(生死苦)라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이 무한한 고를 어떻게 해야벗어나며 해결할 수가 있는가? 그러기 위하여서는 굳이 천당에 갈 필요도 없고 극락에 갈 필요도 없습니다. 오직 사람마다 누구나 갖고 있는능력, 곧, 무한한 능력을 개발하여 활용하면 이 현실에서 대해탈의, 대자유의, 무애자재한 생활을 할 수 있는 것입니다. 이것이 불교의 근본원리입니다.
불교에서는 영원한 생명과 무한한 능력을 '불성(佛性)'이니 '법성(法性)'이니 또는 '여래장(如來藏)'이니 '진여(眞如)'니 등등으로 말하고있으며, 누구든지 이것을 평등하게 가지고 있다고 봅니다. 그리고 이것을 개발하면 곧 부처가 되므로 달리 부처를 구하지 말라고 합니다.
그러면 생사해탈의 근본은 어디에 있는가? 일찌기 선문(禪門)에서 조사(祖師) 스님들은 말씀하셨습니다.
산 법문 끝에서 바로 깨치면
영겁토록 잊지 않는다.
곧 불교의 근본 질리를 바로 깨치면 그 깨친 경계, 깨친 자체는 영원토록 잊어버리거나 없어지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일상생활에서 배운 기술이나 지식은 시간이 지나면 잊기도 합니다만,도를 성취하여 깨친 이 경계는 영원토록 잊어버리지 않습니다. 금생에만 잊어버리지 않는 것이 아니고, 내생에도, 내내생에도 영원토록 잊어버리지 않습니다. 동시에 생활의 모든 것을 조금도 틀림없이 모두 다기억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불교에서 말하는 영겁불망(永劫不忘)이라는것입니다.
마조(馬祖)스님께서는 이에 대해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한번 깨치면 영원히 깨쳐서
다시는 미혹하지 않는다.
그러므로 깨쳤다가 매(昧)했다 또 깨쳤다 하는 것이 아니고 한번 깨치면 금생, 내생, 여러 억천만 생을 내려가더라도 영원 토록 어둠에 빠지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또 원오스님도 그에 대해 말씀하셨습니다.
한번 깨치면 영원히 얻어서
천겁, 만겁을 두고 그와 똑같을 뿐 변동이 없다.
깨친 경계에 조금이라도 변동이 생기면 그것은 바로 깨친 것이 아니라는 말입니다. 이렇게 되면 이에 따르는 그 신비하고 자유자재한 활동력인 신통묘력(神通妙力)은 말로 다 표현할 수 없으니, 참으로 불가설불가설(不可說 不可說)입니다.
대자유에이르는 길, 곧 영겁불망(永劫不忘)인 생사 해탈의 경계를성취함에 있어서는 여러가지 방법이 있지만 그 중에서도 가장 빠른 것이 참선입니다. 참선은 화두(話頭)가 근본이며, 화두를 부지런히 참구하여 바로 깨치면 영겁불망이 안 될래야 안 될 수가 없습니다. 영겁불망은 죽은 뒤에나 알 수 있는 것이라고 생각하기 쉬우나 그렇지 않습니다. 생전에도 얼마든지 알수 있습니다. 숙면일연(熟眠一如)하면, 곧 잠이 아무리 깊이 들어도 절대 매(昧)하지 않고 여여불변(如如不變)하게되면, 그때부터는 영겁불망이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숙면일여가 여래(如來)의 숙면일여가 되면 진여일여(眞如一如)가 되지만, 보살의 숙면일여는 8지 보살의 아라야(阿梨耶 ; Alaya)위(位)에서입니다. 제8아라야 위에서의 숙면일여는 보통 우리가 말하는나고 죽음에서, 곧 분단생사(分段生死)에서 자유자재합니다. 그러나 미세한 무의식이 생멸하는 변역생사(變易生死)가 남아 있어서 여래와 같은 진여위(眞如位)의 자재(自在)함은 못 됩니다. 그러므로 아라야 위에서의 숙면일여는 바로 깨친 것이 아니며, 여래위, 진여위에서의 숙면일여가 되어야만 참다운 영겁불망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8지 이상의 아라야 위에서의 숙면일여만 되어도 결코 죽음으로 인하여 다시 매하지는 않습니다. 영원토록 퇴진(退進)하지 않는다는말입니다. 아라야 위에서의 불망(不忘)과 진여위에서의 불망은, 차이는있지만, 다시 매하지 않는 불퇴전(不退轉)은 같습니다. 오매일여도 여래 위에서의 오매일여와 아라야 위에서의 오매일여가 다르면서 또한 같은 것과 흡사합니다. 숙면일여라고 하여 잠이 깊이 들어도 여여한 것이라고 하면 누구나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냐고 생각할 수 있지만, 그것은결코 쉬운 일이 아닙니다. 예로부터 대종사, 대조사치고 실제로 수면일여한 데에서 깨치지 않은 사람은 한 사람도 없습니다.
누구나 깨치기 전에는 모든 것이 식심분별(識心分別)이므로 앞 못 보는 영혼에 불과합니다. 봉사 영혼이 되어서 수업수생(隨業受生)하니 곧업따라 다시 몸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자신의 자유는 하나도 없습니다. 김 가가 되고 싶어도 마음대로 안되고, 박 가가 되고 싶어도 마음대로 안 됩니다. 중처변추(重處便墜)로서 곧 자기가 업을 많이 지은 곳으로 떨어집니다. 그것은 어쩔 수 없는 이치입니다. 자기의 자유가 조금도 없는 것을 수업수생이라고 합니다.
그러나 자유자재한 경계가 되면 수의왕생(隨意往生)하니 곧 자기가마음먹은 대로 할 수 있습니다. 동으로 가든 서로 가든, 김 가가 되든박 가가 되든 마음대로 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수의왕생으로, 불교의이상이며 부처님 경전이나 옛 조사스님들이 말씀하신 것입니다.
수의왕생이 되려면 숙면일여가 된 데에서 자유자재한 경계를 성취해야 합니다. 그렇게 되기 전에는 아무리 아는 것이 많고, 부처님 이상가는 것같아도 그것으로 그치고 맙니다. 몸을 바꾸면 다시 캄캄하여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송나라 철종(哲宗) 원우(元祐) 7년(1092)이었습니다. 소동파(蘇東坡)의 동생이 고안(高安)에 있을 때 동 산문(洞山文)선사와 수성 총(壽聖聰)선사와 같이 지냈습니다. 그 동생이 하루 밤에 두 스님과 함께 성밖에 나가서 오조 계(五祖戒) 선사를 영접하는 꿈을 꾸었는데, 그 이튿날에 형인 동파가 오는 것이었습니다. 그 때 동파의 나이가 마흔아홉이었는데 계(戒) 선사가 돌아가신 지 꼭 오십 년이 되던 때였습니다. 오십 년전 그의 어머니가 동파를 잉태하였을 때 꿈에 한쪽 눈이 멀고 몸이 여윈 중이 찾아와서 자고 가자고 하였더라는 것입니다. 그가 바로계선사였습니다. 계 선사는 살아서 한쪽 눈이 멀고 몸이 여위었더랬습니다. 동파 자신도 어려서 꿈을 꾸면 스님이 되어서 협우에 있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그런데 계 선사가 바로 협우 사람이었습니다.
이 사실들로써 동파가 계 선사의 후신인 줄 천하가 다 잘 알게 되어서 동파도 자신을 계 화산(戒和尙)이라고 불렀습니다. 그리고 동파는자주 동산(洞山)에게 편지를 해서 '어떻게 하든지 전생과 같이 불법(佛法)을 깨닫게 하여 달라' 하였으나 전생과 같이는 되지 못하고 죽었습니다. 오조 계(五祖 戒) 선사는 운문종의 유명한 선지식이었는데, 지혜는 많았지만 실지로 깊이 깨치지 못한 까닭에 이렇게 어두워져 버린 것입니다.
실제로 옛날의 고불고조(古佛古祖)는 오매일여가 기본이 되고, 영겁불망이 표준이 되어서 수도하고 법을 전했습니다. 여기에 실례를 들어이야기하겠습니다.
2. 대혜 선사
앞에서 나온 오조 법연 선사의 제자에 원오 극근 선사가 있고, 그 제자에 대혜 종고 선사가 있습니다. 강원에서 배우는 [서장(書狀)]이라는책이 대혜 종고 선사의 법문으로, 그는 임제의 정맥으로서 천하의 법왕(法王)이라고 자처하고 있었습니다. 이제 대혜 스님이 어떻게 공부했고어떻게 인가를 받았는가에 대해 이야기를 하겠습니다.
대혜스님은 스무살 남짓 되었을 때, 요즘 말로 '한소식'했다고 해서사람들을 놀라게 했습니다. 그런데 그 소식은 진짜 소식이 아니라 가짜소식이었습니다. 그래도 전생 원력이 크고, 또 숙세(宿世)의 선근(善根)이 깊은 분이어서 그 지혜가 수승했습니다. 그래서 가짜 소식을 진짜 소식으로 사용했던 것입니다. 이 가짜 소식을 가지고 천하를 돌아다니는데, 이 가짜 소식에 모두 속아 넘어갔습니다. 비유로 말하자면 대혜 스님이 성취한 것은 엽전에 불과한데 세상 사람들은 진금(眞金)처럼여기고 '바로 깨쳤다'고 인가를 하여 대혜스님은 더욱 기고만장하여 날뛰고 다녔습니다.
그 무렵 '천하 5대사'라는 다섯 분의 선지식이 있었는데, 그 가운데담당 무준(湛堂無準) 선사라는 분이 있었습니다. 대혜스님이 이 선사를찾아가며 '천하 사람이 나를 보고 참으로 깨쳤다고 하고 진금(眞金)이라고 하니 이 스님인들 별 수 있을까?'하고 생각했습니다. 그러고는 병의 물을 쏟듯, 폭포수가 쏟아지듯 아는 체하는 말을 막 쏟아부었습니다. 담당스님이 가만히 듣고 있다가 "자네 좋은 것 얻었네. 그런데 그좋은 보물 잠들어서도 있던가?" 하고 물어왔습니다. 자신만만하게 횡해천하(橫行天下)하여 석가보다도, 달마보다도 낫다 하던 그 공부가 잠들어서는 없는 것입니다. 법력이 천하 제일이라고 큰 소리 텅텅 쳤지만잠이 들면 캄캄해지고 마는 것입니다.
그래서 대혜스님은 담당스님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스님, 천하 사람들이 모두 엽전인가 봅니다. 저를 엽전인줄 모르고금덩어리라고 하니 그 사람들이 모두 엽전 아닙니까? 스님께서 제가 엽전인 줄 분명히 지적해 주시니 스님이야말로 진짜 금덩어리입니다. 사실 저도 속으로 의심을 하고 있었습니다. 모든 것에 자유자재하지만 공부하다 깜박 졸기만 하면 그만 아무것도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제가깨달은 이것이 실제인지 아닌지 의심하고 있었습니다."
이 말을 들은 담당 부준 선사는 크게 꾸짖었습니다.
"입으로 일체 만법에 무애자재하여도 잠들어 캄캄하면 어떻게 생사를해결할 수가 있느냐! 불법이란 근본적으로 생사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야. 생사해탈을 얻는 것이 근본이야. 잠들면 캄캄한데 내생은 어떻게하겠어."
그러면서 담당스님은 대혜스님을 내쫓았습니다. 대혜스님의 근본 병통(病痛)을 찔렀던 것입니다.
또, 옛날에 경순(景淳)선사라는 스님이 있었는데 자신의 법이 수승한듯 여기고 있었습니다. 그러다가 한번은 잘못하여 넘어진 뒤로 중풍에걸렸는데, 그러고 나니 자기가 알고 있었던 것과 법문했던 것을 모조리잊어 버리고 그만 캄캄한 벙어리가 되어 버렸습니다. 모든 법을 아는체했지만 실지로 바로 깨치지 못했기 때문에 한번 넘어지는 바람에 모든 것이 다 없어지게 된 것입니다.
그 때 도솔조 선사라는 이가 행각(行脚)을 다니다가 이 모습을 직접눈으로 보고는 이렇게 한탄했습니다.
"한번 넘어져도 저렇게 되는데 하물며 내생이야."
이 생사 문제는 영겁불매가 되어 억천 만겁이 지나도록 절대 불변하여 매(昧)하지 않아야 성취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한번 넘어져도 캄캄하니 몸을 바꾸면 두말할 것도 없는 것입니다.
천하에 자기가 제일인 것 같았던 대혜스님도 무준 선사가 그렇듯 자기의 병통을 콱 찌르니 항복 안 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리하여 다시 공부를 시작하여 죽음을 무릅쓰고 정진하고 있었는데 담당 무준 선사가시름시름 병을 않더니 곧 죽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스님께서 돌아가시면 누구를 의지해야 하겠습니까?" 하고 물으니 경사(京師)의 원오 극근선사를 소개해 주었습니다. 그 유언을 따라 그는 원오 극근 선사를 찾아갔습니다.
찾아가서 무슨 말을 걸어 보려고 하나 원오스님은 절벽 같고, 자기공부는 거미줄 정도도 안 되는 것이었습니다. 만약 원오 극근 선사가자기의 공부를 조금이라도 인정하는 기색이면 그를 땅 속에 파묻어 버리리라는 굳은 결심으로 찾아갔는데, 어떻게 해 볼 도리가 없었습니다.그리하여 '아하, 내가 천하가 넓고 큰 사람 있는 줄 몰랐구나 !'라고크게 참회하고 원오 선사에게 여쭈었습니다.
"스님, 제가 공연히 병을 가지고 공부인 줄 잘못 알고 우쭐했는데,담당 무준 선사의 법문을 듣고 그 후로 공부를 하는데 아무리 해도 잠들면 공부가 안 되니 어찌 해야 됩니까?"
"이놈아, 쓸데없는 망상 하지 말고 공부 부지런히 해. 그 많은 망상전체가 다 사라지고 난 뒤에, 그 때 비로소 공부에 가까이 갈지 몰라."
이렇게 꾸중 듣고 다시 열심히 공부를 하였습니다. 그러다가 한번은원오스님의 법문을 듣다가 확철히 깨달았습니다. 기록에 보면 '신오(神悟)'라 하였는데, 신비롭게 깨쳤다는 말입니다. 그 때 보니 오매일여입니다. 비로소 꿈에도 경계가 일여하게 되었습니다. 이리하여 원오스님에게 갔습니다. 원오스님은 말조차 들어보지 않고 쫓아냈습니다. 말을하려고만 하면, "아니야, 아니야 [不是不是]"라는 말만 되풀이합니다.그러다가 원오스님은 대혜스님에게 '유구와 무구가 등칡이 나무를 의지함과 같다 [有句無句 如藤倚樹;유구무구 여등의수]'는 화두를 물었습니다. 그래서 대혜스님은 자기가 생각할 때는 환하게 알 것 같아 대답을했습니다. 그러나 원오스님은 거듭 아니라고 하셨습니다.
"이놈아, 아니야. 네가 생각하는 그것이 아니야. 공부 더 부지런히해!"
대혜스님이 그 말을 믿고 불석신명(不惜身命)하여, 곧 생명을 아끼지아니하고 더욱 부지런히 공부하여 드디어 깨쳤습니다. 이렇듯 대혜스님은 원오스님에게 와서야 잠들어도 공부가 되는데까지 성취했습니다. 이렇게 확철히 깨쳐 마침내 원오스님에게서 인가를 받았습니다. 동시에임제의 바른 맥(臨濟正宗)을 바로 깨쳤다고 하여 원오스님이 임제정종기(臨濟正宗記)를 지어 주었습니다. 이리하여 대혜스님은 임제정맥의대법왕으로서 천하의 납자(衲子)들을 지도하고 천하 대중의 대조사가되었던 것입니다. 이 모든 것이 대혜스님 어록에 남아 있습니다.
잠이 깊이 들어서도 일여한 경계에서 원오스님은 또 말씀하셨습니다.
"애석하다. 죽기는 죽었는데 살아나지 못했구나(句惜 死了不得活)."
일체망상이 다 끊어지고 잠이 들어서도 공부가 여여한 그 때는 완전히 죽은 때입니다. 죽기는 죽었는데 거기서 살아나야 합니다. 그러면어떻게 해야 살아나느냐?
"화두를 참구 안 하는 이것이 큰 병이다(不疑言句 是爲大病)."
공부란 것이 잠이 깊이 들어서 일여한 거기에서도 모르는 것이고, 거기에서 참으로 크게 살아나야만 그것이 바로 깨친 것이고, 화두를 바로안 것이며 동시에 그것이 마음의 눈을 바로 뜬 것입니다.
이처럼 바로 깨치려면 오매일여(寤寐一如)가 되어야 합니다. 내가 항상 이 오매일여를 주장한다고 오매일여병에 들었다고 말하는 사람도 있지만 이 오매일여를 인정하지 않는 사람은 불법을 인정하지 않는 사람이고, 또 선(禪)을 모르는 사람입니다.
대혜스님과 같은 대근기(根機)도 오매일여가 되기 전에는 그것을 믿을 수 없었습니다. 그렇다고 부처님께서 오매일여를 말씀했으니 안 믿을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속으로 '부처님 말씀이 거짓말 아닐까?'하는생각도 들었지만 그러다가 자기가 완전히 오매일여가 되고 보니 부처님께서 말씀하신 그대로였습니다. 그래서 대혜선사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부처님께서 오매일여라 하신 말씀이 참말이요, 실제로구나(佛設寤寐一如 是眞言是實言)."
3. 태고스님
지금까지 중국의 스님 이야기를 했는데, 우리나라 선문 가운데에 태고(太古)스님이 계십니다. 태고스님은 공부한 지 20여년 만인, 나이 마흔에 오매일여가 되고 그 뒤 확철히 깨쳤습니다. 깨치고 보니 당시 고려의 큰스님네들이 자기 마음에 들지 않았습니다. 자기를 인가해 줄 스님도 없고, 자기 공부를 알 스님도 없었습니다. 그래서 중국으로 가서그곳에서 임제정맥을 바로 이어 가지고 돌아왔습니다.
그 스님은 늘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점점 오매일여한 때에 이르렀어도 다만 화두하는 마음을 여의지 않음이 중요하다 (漸到寤寐一如詩 只要話頭心不離)."
이 한 마디에 스님의 공부가 다 들어 있습니다.
공부를 하여 오매일여한 경계, 잠이 아무리 들어도 일여한 8지 이상의 보살 경계, 거기에서도 화두를 알기는 쉬운 일이 아닙니다. 그런데앞에서도 말했듯이 몽중일여도 안 된 거기에서 화두를 다 알았다고 하고 내 말 한번 들어보라 하는, 잘못된 견해를 갖는다면 이것이 가장 큰병입니다. 이 병은 스스로 열심히 공부해서 고치려 하지 않으면 고쳐지지 않습니다. 다 죽어가는 사람에게 좋은 약을 가지고 와서, '이 약만먹으면 산다' 하며 아무리 먹으라 해도 안 먹고 죽는다면 억지로 먹여서 살려낼 재주 없습니다. 배가 고파 다 죽어가는 사람에게 만반진수(滿盤珍羞)를 차려와서 '이것만 잡수시면 삽니다' 해도 안 먹고 죽으니부처님도 어찌 해볼 재주가 없습니다. 아난이 부처님을 30여년이나 모셨지만 아난이 자기 공부 안 하는 것은 부처님도 어쩌지 못했습니다.
내가 항상 말하는 것입니다만 누구든지 아무리 크게 깨치고 아무리도를 성취했다고 해도 그 깨친 경계가 동정일여(動靜一如), 몽중일여(夢中一如), 숙면일여(熟眠一如)하여야만 실제로 바로 깨쳤다고 할 수있습니다. 동정일여도 안 되고, 몽중일여도 안 된 그런 깨침은 깨친 것도 아니고 실제 생사에는 아무 소용도 없습니다.
참선은 실제로 참선해야 하고 깨침은 실제로 깨쳐야 합니다. 그래야생사에 자재한 능력을 가질 수 있는 것입니다. 단지 생각으로만 깨쳤다고 하는 것은 생사에 자유롭지 못한 것으로, 깨침이 아니라 불교의 병이요, 외도(外道)입니다. 참선의 근본요령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우리의 공부는 실제로 오매일여가 되어 영겁불망이 되도록 목숨을 던져놓고 해야 하는 것입니다. 신명을 아끼지 않고, 목숨도 돌보지 않고 부지런히 노력해야 합니다.
부지런히 노력해야 한다고 하니까 어떤 사람은 "스님, 저는 화두를배운 지 십년이 지났습니다만 공부가 안됩니다"라고 말하기도 합니다.공부를 해도 안 된다는 것은 결국 공부를 안했다는 말입니다. 마치 서울에 꼭 가고 싶으면 자꾸 걸어가야 끝내는 서울에 도착하게 되듯이,십년 이십년을 걸어가도 서울이 안 보인다는 말은 서울로 안 가고 가만히 앉아 있었다는 말과 같습니다.
4. 불등 순 선사
불등 순(佛燈詢)스님이 있었습니다. 그는 오조 법연 선사의 손제자(孫弟子)되는 분으로, 대혜 선사와는 사촌간이었습니다. 불감 근(佛鑑懃) 선사 밑에서 약 삼년 동안 공부하였는데 불감 근 스님께서 가만히살펴보니, 이 스님이 근기는 괜찮은데 게을러서 공부를 하지 않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불감 근 스님이 한번은 불등 순 스님을조용히 불러 "네가 내밑에서 얼마나 있었느냐?"라고 물으니, "삼년 있었습니다"라고 대답했습니다. 그래서 삼년 동안 공부한 것을 내놓으라고 했습니다. 이렇게되니 불동 순 스님은 큰일이 났습니다. 삼년 동안 밥이나 얻어 먹고 낮잠이나 자고 공부는 안 했으니 내놓을 것이 없었습니다. 드디어 불감근 스님께서 공부에 대해 한 마디 물어 보았으나 도무지 캄캄하여 대답을 못하고 있었습니다. 그러자 불감 근스님은 "이 도둑놈, 밥도둑놈아.삼년 동안 내 밥만 축냈구나. 삼년을 공부했다면 어찌 이것을 대답 못해? 밥만 축낸 밥도둑놈, 이런 놈은 하루 만 명을 때려 죽여도 인과도없어" 하고는 마구 패는 것이었습니다.
불등 순 선사는 가만 있다가는 아주 맞아 죽을 것 같았습니다. 그래서 안 맞아 죽으려고 도망을 쳤습니다. 비는 주룩주룩 내리는데 도망가다가 처마 밑에 서서 가만히 생각해 보았습니다. '코도 입도 몸뚱이도불감 근 선사와 똑같은데 왜 저 스님은 두들겨 패고, 나는 맞아야 하는가? 어째서 저 스님은 도를 성취했는데 나는 이루지 못하는가?'
이렇게 반성하며 다시 절로 들어가서는 자신이 스님에게 한마디 대답도 못하고 밥도둑놈이라는 소리를 들으며 쫓겨났으니 바로 깨치게 될때까지라도 자지 않고 눕지도 않고 오직 서서만 지내겠다고 대중에게선언했습니다. 정진은 계속 되었습니다. 밤이 되었는지 낮이 되었는지,밥을 먹었는지 안 먹었는지, 사람이 있는지 없는지도 잊은 채 계속 정진하였습니다. 불감 근스님이 이를 보고는 용맹심이 대단하다고 생각했습니다. 사실 불등 순스님은 화두 하나만 갖고 생각하고 있을 뿐이었습니다.
하루는 불감 근스님이 그를 불렀습니다. 불등 순스님은 겁은 났지만부르는데 안 갈 수가 없어서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스님앞에 앉았습니다. 그러자 불감 근스님이 무슨 법문을 해 주시는데, 그 법문을 듣는순간 불등 순스님은 무슨 법문을 해 주시는데, 그 법문을 듣는 순간 불등 순스님은 그만 확철히 깨쳤습니다. 그리고 그 자리에서 인가를 받았습니다. 정진을 시작해서 도를 성취하기까지의 기간을 헤아려 보니 사십 구일 동안이었습니다. 사십구일 동안을 먹는 것도 잊어버리고 입는것, 자는 것도 잊어버리고 오직 서서 공부만 했던 것입니다. 불등 순스님은 실제로 용맹정진을 했고, 그리하여 깨쳐서 인가를 받은 것입니다.
불감 근스님의 사형되는 분에 원오 극근 선사가 있었는데 이 소문을듣고는 찾아왔습니다.
"그까짓 며칠 동안 공부한 것 가지고 뭘 안다고 인가를 해줘. 사람을죽여도 푼수가 있지. 내가 봐야겠으니 그놈 오라고 해."
이렇게 불등 순스님을 불러서는 산으로 데리고 갔습니다. 산모퉁이를도니 절벽이 나오는데, 절벽 밑에는 폭포가 있고 폭포 밑에는 깊은 소(沼)가 있었습니다. 그 옆을 지나가는데 원오스님이 그를 절벽 밑의 폭포 속으로 확 밀어넣더니 공부한 것을 묻는 것이었습니다. 물길이 깊어발이 땅에 닿지도 않고, 입으로 코로 마구 물이 쏟아져 들어오는데다가폭포소리가 요란하여 소리도 잘 들리지 않았습니다. 이렇게 정신을 잃게 해 놓고는 법을 묻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불등 순스님은 마치 방안에 앉아서 대답하듯 묻는 말에 척척 대답을 했습니다. 이것을 본 원오스님은 "그놈 죽이기는 아깝구나. 끄집어 내줘라"라고 말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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